“Gan-keang”이 고대도 안항(古代島安港)인 또 결정적 증거 1
글: 오현기 목사
1832년 귀츨라프가 타고 온 로드 애머스트호가 18일 동안 정박하여 그가 본격적으로 선교한 곳이 원산도 개갱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오해는 귀츨라프와 동승한 상무관 린지가 자신이 도착한 항구의 이름을 영문으로 “Gan-keang” 이라 표기한 것을 두고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모든 조선사료와 외국사료가 모두 고대도 안항을 정박 항구로 가리킴에도 불구하고, 원산도 개갱과 Gan-keang의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근본적으로 필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원산도설 지지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지금껏 펼쳐 온 것이다.
그러나 고대도 안항이 Gan-keang임을 증명하는 또 다른 결정적 증거를 중국에 온 최초 개신교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 선교사의 1819년과 1822년 중국어 사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자료들을 참고 할때 Gan-keang은 고대도 안항임이 분명하다. 이 자료로 말미암아 Gan-keang에 대한 잘못된 주장이 종식되기를 바란다.
더 깊은 연구는 다음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고대도안항(古代島安港)과 “Gan-keang”의 상관관계연구
-“원산도 개갱 정박설”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http://guetzlaff.kr/index.php?mid=board_mJKu39&document_srl=486
Evangelischer Reichsbote(1851년)
유리에 스테른(Julie Stern)에게 성명 미상의 프리드리히(Friedrich)가 보낸 편지, 1843년 3월 17일
린지의 북중국 항해기(1834, 2판)
귀츨라프의 3차례 동아시아 항해기(1834년, 영문 2판)
베를린 보헤미야 베들레헴교회
요하네스 예니케(Johannes Jänicke)의 편지(1814. 10.18 )
귀츨라프의 救世主耶穌基督行論之要略傳, 1834년
다큐멘터리 2 : CTS-TV “한국에온 최초의 선교사 귀츨라프”
화보신문(독문, Leipzig, 1845년)
귀츨라프 초상화 (석판화)
마틴 루터 박사의 몇 가지 결정 (Etliche Schlüsse Dr. Martin Luther, 1547년)
로드 애머스트호는 몇 톤인가?
제 7회 칼 귀츨라프의 날 학술발표회(논문포함)
귀츨라프의 친필 역사 에세이(1826년경)
귀츨라프의 3번째 강연문( 1850년 6월 )
귀츨라프의 스승 요한 예니케 목사 전기 (186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