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귀츨라프 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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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에 스테른(Julie Stern)에게 성명 미상의 프리드리히(Friedrich)가 보낸 편지, 1843년 3월 17일

 

유리에 스테른(Julie Stern)에게 프리드리히(Friedrich)가  보낸 편지, 1843년 3월 17일
(소장 : OHK)
“1842년 8월에 귀츨라프가 독일 뷰텐베르그 주의 영적 각성 운동의 아버지라 불리는 크리스티안 콭로브 바르트(Christian Gottlob Barth, 1799∼1862)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양쯔강을 여행하는 것이 주님이 중국 내륙을 선교하게 하기 위해 기회를 여신 것으로 여기면서 양쯔강의 원천을 따라 여행하였다. 나는 코노르(Kokonor), 티베트(Tibet), 스마르칸트(Samarkand, 우즈베키스탄의 한 지명)경유하여 터키 (Tuerkei)로, 칼프(Calw)로 오길 원한다”고 편지에 썼다.
또한 이 사실은 1943년 3월 17일자 성명 미상의 프리드리히(Friedrich)가 당시 바젤선교회의 교육자이자 세미나 원장이었던 빌헬름 스테른(Wilhelm Stern)의 외동딸 유리에 스테른(Julie Stern)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확인되는데, 크리스티안 바르트의 편지를 그대로 인용하며 귀츨라프가 코코노르, 티베트, 수마르칸트, 터키, 독일 칼프에 오길 원했다고 확인하고 있다. 실제로 이 일은 계획으로만 그쳤다. 귀츨라프가 첫 번째 유럽으로 다시 돌아 온 것은 1849년 12월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편지에 나타난 성명 미상의 프리드리히는 누구였을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바르트로부터 귀츨라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던 사람들 중에,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엘버스(Christian Friedrich Elvers, 1797∼1858)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그는 평소 바르트가 편집장으로 있는 칼브선교잡지(Calwer Missionsblatt)의 중국선교소식을 통해 귀츨라프의 중국선교에 감명을 받고 큰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후에 중국선교사역을 위해 1946년 귀츨라프 같은 중국 선교사를 후원할 목적으로 바르트와 함께 카셀 선교회(Chinesiche Stiftung in Kassel)를 설립한 사람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오현기, 굿 모닝 귀츨라프: 한국에 온 최초의 개신교선교사, 성남: 북코리아, 2014, 266-268)